시즌 마감 재고, 어디서 새고 있나

시즌이 끝날 때마다 창고에 쌓인 재고를 보며 '이번엔 왜 또 이렇게 됐지?' 하고 자문하신 적 있으신가요? 한쪽에서는 특정 컬러·사이즈가 시즌 내내 품절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같은 상품이 창고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시즌 마감 후 남은 재고를 할인 소진하면서 마진이 녹아내리는 그 순간 — 사실 그 손실은 시즌이 끝나서 생긴 게 아닙니다. 훨씬 앞에서, 여러 지점에서 조금씩 '새고' 있었던 겁니다.
재고 손실은 마감 때 드러나지만, 원인은 훨씬 앞에 있다
많은 브랜드가 시즌 마감 재고를 '판매 부진'의 결과로만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 뜯어보면 판매력 문제보다 운영 구조의 허점에서 비롯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상품이 팔릴 기회가 있었는데 팔리지 못한 것이죠.
연매출 50억~150억 원 규모, 매장 10~25개를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즌 마감 재고가 전체 발주 물량의 15~20%에 달한다면, 그 중 절반만 정상가에 팔렸어도 시즌 영업이익이 수천만 원 달라집니다. '어쩔 수 없는 재고'라고 넘기기엔 너무 큰 숫자입니다.
재고가 새는 4가지 지점
1. 초도 배분: '감'으로 나눈 재고가 처음부터 틀렸다
시즌 초에 각 매장에 물량을 배분할 때, 지난 시즌 엑셀 파일을 열고 '이 매장은 좀 더, 저 매장은 좀 덜'을 직관으로 조정하고 있다면 — 이미 여기서 재고가 새기 시작합니다.
매장별 입지, 고객 연령대, 전년 동기 판매 패턴, 재고 회전율이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물량을 뿌리면, 시즌 첫 3주 안에 A매장은 이미 소진 위기, B매장은 선반이 넘칩니다. 이때 보충 요청이 들어오면 이미 늦습니다. 피크 판매 시기를 놓친 겁니다.
현실적인 비용: 초도 배분 오류로 인한 피크 시즌 품절은 전체 시즌 매출의 5~8%를 날린다는 분석이 국내외 패션 리테일에서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매출 100억 브랜드라면 5억~8억 원입니다.
2. 보충 사이클: 너무 느리거나, 너무 감에 의존한다
재고가 부족한 매장이 본사에 보충 요청을 보내고, 담당자가 창고 재고를 확인하고, 출고를 결정하고, 실제로 매장에 도착하기까지 — 이 사이클이 며칠이나 걸리나요?
많은 브랜드에서 이 사이클이 3~5일입니다. 주말 판매 피크를 앞두고 목요일에 요청이 들어오면, 물건은 다음 주 화요일에 도착합니다. 그 주말 매출은 이미 날아간 거죠. 더 큰 문제는 보충 판단 자체가 '매장 점장의 요청'에만 의존한다는 겁니다. 점장이 바쁘거나, 재고 파악이 안 되거나, 요청을 잊으면 — 창고에 재고가 있어도 매장은 비어 있습니다.

3. 매장 간 재고 이동: 하고 싶어도 '보이지 않아서' 못 한다
A매장에 재고가 남아돌고 B매장에 재고가 없을 때, 가장 빠른 해결책은 매장 간 이동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결정을 내리려면 — 지금 이 순간 각 매장의 SKU별 재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엑셀이나 POS 데이터를 취합하는 방식으로는 '지금 이 순간'의 재고를 볼 수 없습니다. 어제 데이터, 혹은 그제 데이터입니다. 그 사이에 판매가 일어났고, 반품이 들어왔고, 재고 실사 차이가 생겼습니다. 결국 매장 간 이동 결정은 전화 몇 통과 감으로 이루어지고, 이동 자체가 귀찮아서 그냥 창고로 회수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4. 시즌 말 할인 타이밍: 너무 늦게, 너무 깊게
재고 소진을 위한 마크다운(할인) 결정이 늦어질수록, 나중에 더 깊은 할인을 해야 합니다. 시즌 종료 3주 전에 10% 할인으로 소진할 수 있었던 재고가, 1주 전에는 30% 할인을 해도 안 팔립니다.
문제는 '언제 할인을 시작해야 하는가'를 판단할 데이터가 없다는 겁니다. 현재 판매 속도로 시즌 마감까지 몇 개나 남을지 — 이걸 SKU별로 계산하는 브랜드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담당자가 감으로 '슬슬 빼야겠다'고 느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운영 구조를 바꾸면 재고 손실도 바뀐다
위의 4가지 지점은 모두 정보의 지연과 판단의 감(感) 의존이라는 공통 원인을 가집니다. 해결책은 거창한 AI 시스템이 아닙니다. 지금 운영 방식에서 정보가 어디서 막히고, 어디서 늦어지는지를 찾아내고, 그 지점을 자동화하거나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배분·보충 로직의 자동화
매장별 판매 속도, 재고 수준, 잔여 시즌 일수를 기반으로 보충 우선순위를 자동으로 계산하면 — 담당자가 매일 아침 엑셀을 열고 계산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오늘 어느 매장에 뭘 보내야 하는가'가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담당자는 판단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루브릭랩스가 F&F의 전국 700개 매장 배분·보충 로직을 자동화한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매장 수가 많아질수록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판단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재고 손실이 구조적으로 발생합니다.
실시간 재고 가시성
매장별 SKU 재고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면, 매장 간 이동 결정이 전화 한 통 없이도 가능해집니다. '지금 C매장에 이 상품 7개 있는데, D매장은 0개다' — 이 정보가 화면에 있으면 결정은 쉬워집니다.
판매 속도 기반 마크다운 시그널
현재 판매 속도로 시즌 마감 시점에 남을 재고를 SKU별로 예측하면, '지금 할인을 시작해야 하는 상품'이 자동으로 표시됩니다. 담당자가 느끼기 전에 시스템이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10% 할인으로 소진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 — 이것만으로도 시즌 마진이 의미 있게 달라집니다.
마무리
시즌 마감 재고는 '판매가 안 된 결과'가 아니라 '팔릴 수 있었는데 팔리지 못한 기회의 합산'입니다. 초도 배분의 오류, 느린 보충 사이클, 보이지 않는 매장 간 재고, 늦은 할인 결정 — 이 네 지점 중 하나만 개선해도 시즌 마진이 달라집니다. 마르디 메르크레디의 폭발적 성장기에 리오더와 생산 일정을 통합 관리하는 ERP를 함께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언제 무엇을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가'를 감이 아닌 데이터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시즌 마감 후 창고를 보며 한숨 쉬는 대신, 지금 운영에서 재고가 새는 지점이 어딘지 먼저 짚어보고 싶으시다면 →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