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요 예측이 시즌 기획을 바꾸는 법

지난 시즌 기획 회의를 떠올려 보세요. MD 팀장이 작년 동기 판매 데이터와 엑셀 피벗 테이블을 펼쳐 놓고, 영업팀 의견을 반영해 수량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결국 "작년보다 10% 올리자"는 결론이 나왔던 그 회의 말입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났을 때, 일부 컬러는 2주 만에 품절됐고 나머지 컬러는 아직도 창고에 쌓여 있습니다.
이건 특정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매출 50억~150억 원 규모의 패션 브랜드라면 거의 예외 없이 겪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시즌 기획의 진짜 비용: "감"으로 잃는 돈
품절 손실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다
재고가 남으면 할인 손실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원가 3만 원짜리 제품을 50% 세일하면 얼마를 잃었는지 바로 계산됩니다. 하지만 품절 손실은 다릅니다. 팔렸을 수도 있는 매출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습니다.
업계 평균 데이터를 보면, 패션 리테일에서 품절로 인한 기회 손실은 전체 시즌 매출의 7~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매출 100억 원 브랜드라면 매 시즌 7억~15억 원이 조용히 사라지는 셈입니다.
재고 과잉의 복합 비용
반대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즌 말 재고가 남으면 단순히 할인 손실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 창고 점유 비용: 다음 시즌 신상품이 들어올 공간을 이월 재고가 차지합니다.
- 현금 유동성 문제: 팔리지 않은 재고는 묶인 현금입니다. 다음 시즌 발주 여력이 줄어듭니다.
- 브랜드 가치 훼손: 상시 세일은 고객의 정가 구매 의지를 무너뜨립니다.
매장 15개, SKU 1,200개 규모의 브랜드가 시즌 말 재고율 25%를 기록한다면, 창고에 묶인 재고 원가만 수억 원에 달합니다. 이 돈이 매 시즌 반복해서 잠기는 구조입니다.
AI 수요 예측이 기존 방식과 다른 이유
엑셀이 못 보는 변수들
기존 시즌 기획은 주로 과거 판매 실적에 의존합니다. 작년 같은 기간에 얼마나 팔렸는지를 기준으로 올해 수량을 산정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MD의 직관과 영업팀의 현장 감이 더해집니다.
이 방식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엑셀은 다음 변수들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합니다.
- 작년과 달라진 경쟁 브랜드의 출시 일정
- SNS에서 특정 컬러나 실루엣의 트렌드 상승 신호
- 날씨 패턴 변화가 카테고리별 수요 시점에 미치는 영향
- 매장별 상권 변화(인근 경쟁사 입점, 유동인구 변화)
- 전년도에 없었던 신규 채널(자사몰, 특정 플랫폼)의 기여도
AI 수요 예측 모델은 이 변수들을 동시에 학습하고, 매 시즌 업데이트합니다. 사람이 엑셀로 관리할 수 있는 변수의 수는 현실적으로 5~10개입니다. AI는 수십 개의 변수를 동시에 처리합니다.
예측의 단위가 달라진다
기존 방식은 보통 카테고리 단위로 기획합니다. "아우터 전년 대비 15% 증량"처럼요. 잘해야 스타일 단위까지 내려갑니다.
AI 예측은 SKU × 채널 × 주차 단위로 내려갑니다. 같은 재킷이라도 블랙은 자사몰에서 3주차에 피크가 오고, 베이지는 백화점 채널에서 5주차에 피크가 온다는 식의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이 정밀도가 발주 수량과 배분 타이밍을 완전히 바꿉니다.

실제로 시즌 기획이 어떻게 달라지나
기획 단계: 수량 결정의 근거가 생긴다
기존에는 MD가 "이 스타일 500장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누군가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근거가 경험과 직관이기 때문입니다.
AI 예측이 도입되면 "이 스타일, 이 채널 조합에서 과거 유사 패턴 기준으로 420~580장 범위가 예측됩니다. 단, 현재 SNS 트렌드 지수가 상승 중이므로 상단 시나리오 가중치를 높이는 걸 권장합니다"라는 형태로 대화가 바뀝니다.
MD의 직관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직관에 데이터 근거가 붙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고, 사후 회고도 가능해집니다.
발주 단계: 분할 발주 전략이 가능해진다
예측 정확도가 높아지면 전략이 바뀝니다. 시즌 초에 전량을 발주하는 대신, 초도 물량을 줄이고 시즌 중반에 리오더를 빠르게 집행하는 구조가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시즌 시작 전 100%를 발주했다면, AI 예측 기반으로는 60%를 초도 발주하고 4주차 실판매 데이터를 AI가 분석한 뒤 나머지 40%를 리오더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재고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줄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공급망(생산 리드타임)과의 협업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리오더 리드타임이 12주라면 이 전략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AI 예측의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공급망 유연성과 세트로 설계해야 합니다.
시즌 중 관리: 이상 신호를 빠르게 잡는다
시즌이 시작된 후에도 AI는 계속 일합니다. 예측 대비 실판매가 특정 매장에서 지속적으로 낮게 나오면, 그게 매장 문제인지 상품 문제인지 날씨 문제인지를 빠르게 진단합니다.
기존에는 "3주 지나보고 얘기하자"였다면, AI 기반 모니터링은 1~2주 내에 이상 신호를 플래그합니다. 매장 간 재고 이동이나 프로모션 타이밍 조정을 훨씬 빠르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도입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데이터가 없으면 AI도 없다
AI 수요 예측의 전제 조건은 정제된 과거 판매 데이터입니다. 채널별, SKU별, 일자별 판매 데이터가 최소 2~3시즌 이상 체계적으로 쌓여 있어야 합니다.
현실에서 많은 브랜드가 막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엑셀로 관리하던 데이터는 담당자마다 형식이 다르고, 채널별로 집계 기준이 달라서 합산이 안 됩니다. AI를 도입하기 전에 데이터 정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도구가 아니라 프로세스의 변화다
AI 수요 예측 솔루션을 도입한다고 해서 다음 날부터 기획 회의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MD 팀이 예측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할지, 영업팀과 어떻게 합의할지, 공급망과 어떻게 연동할지 — 이 운영 프로세스 설계가 솔루션보다 더 중요합니다.
도구를 먼저 고르기보다, 현재 기획 프로세스의 어느 단계에서 가장 큰 손실이 발생하는지를 먼저 진단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마무리: 예측의 목적은 정확함이 아니라 더 나은 결정이다
AI 수요 예측이 완벽한 답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합니다. 패션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산업입니다. AI도 틀립니다.
하지만 AI가 틀리는 방식은 사람이 틀리는 방식과 다릅니다. AI는 일관된 기준으로 틀리기 때문에 개선이 가능합니다. 반면 "감"으로 틀리는 것은 왜 틀렸는지 분석하기 어렵고, 같은 실수가 반복됩니다.
시즌 기획에 AI를 도입하는 진짜 이유는 예측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매 시즌 반복되는 "왜 이게 이렇게 됐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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